안녕하세요,
어젯밤 우연히 SNS에서 보고 감명받은 영상이 있어 짧은 글을 남겨봅니다.
아래 첨부된 영상은 2023년 개봉한 일본 영화 <괴물>의 주연으로서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쿠로가와 소야 군의 수상소감인데요, 저는 개인적으로 두 소년의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과 어른들의 괴물 같은 시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<괴물>을 정말 인상 깊게 보기도 했습니다.
https://youtu.be/VcgxQ8cLfz4?si=gs2Jbm-EeAA564KI
쿠로가와 군은 영화를 찍고 나서 벌써부터 인과적/구조적 결정론과 자유의지론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. 나를 둘러싼 일들은 내가 자라온 환경과 이 사회의 구조가 작용한 결과일까요, 나의 노력의 결과일까요? 쿠로가와 군이 언급한 운이라는 놈도 이것이 특정한 형태의 사회에서 보다 잘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면, 어떤 때는 이놈을 거대구조의 부품이자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. 땡땡주의가 우세한 사회에서 그 주의에 맞는 땡땡한 인재가 뽑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사람 입장에서는 명백한 운입니다. 혹은 그 땡땡주의 때문에 똑같은 노력을 한 사람이 너무 다수가 되어도 내가 뽑힐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 역시 그 사회가 만들어낸 운입니다.
하지만 이 중 무엇이 맞다 틀리다 갑론을박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중요한가요, 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사는 게 논리적이고 일관적이기 때문에 그런가요. 어린 시절 저의 고민과 맞물린 쿠로가와 군의 고민 끝에 나온 결심이 "항상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"이라는 점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동력입니다.
자유의지론에 힘을 실어주면 우리는 스스로도, 남에게도 늘 채찍질하며 살아야 합니다. 나 왜 더 노력 안 했을까. 나도 개천에서 용 난 거야 넌 근데 왜 그거밖에 못하니..? 노력해도 성취하지 못하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자가 되어 루저 레이블이 따라붙습니다.
반면 인과적 결정론은 누군가에게 채찍질을 하진 않지만 우리를 눈에 띄게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. 자꾸 힘들었던 나의 과거에 과몰입하게 만들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. 구조가 이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하지? 노력해도 안 바뀔 거야. 다 윤석열 때문이야 등등...
우리는 내 삶을 살 때와 바꾸고 싶은 구조가 있을 때에는 나와 우리의 자유의지를 믿어야 합니다. 하지만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에는 인과적 결정론과 구조의 힘을 상기해야 합니다.
'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크긴 했지만 더 힘낼 수 있고 베풀 수 있어. 다수(*소수자 역시 절대적 숫자로는 다수이지요)를 힘들게 하는 사회의 이런 면은 시민운동으로 바꿔내야지! 이 사람이 이렇게 엉망으로 구는 데에는 어떤 구조적 이유가 있을 거야.'
나에게는 조금 혹독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이런 비일관성이라면, 이런 이중잣대라면 세상을 더 따뜻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?
이런 열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은 오랜 시간 저의 '추구미'였습니다.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러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여가고 있는 것 같아요. 쿠로가와 군의 너무나도 멋진 수상소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.
늘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고민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<괴물>을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강력 추천드리며, 아래는 영상에 나오는 쿠로가와 군의 수상소감 번역문입니다. 저라면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했어야 할 말을 쿠로가와 군은 세 문장으로 간결히 표현해 주네요:
"저는 지금 두 명의 저와 싸우고 있습니다. 괴물에서의 미나토 역을 맡게 된 것이 운이라고 생각하는 저와 마치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고 착각하는 저의 싸움입니다. 매번 이 감정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항상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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